제목   |  외국어 교육 혁신 ‘한국의 폴 사이먼’은… 작성일   |  2008-12-08 조회수   |  6065

  미국 대통령 직속의 외국어 및 국제관계특별위원회는 외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국가의 역량을 강조하면서 외국어능력 평가를 연방정부 수준에서 개입할 수 있는 지침서 작업의 필요성을 1979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당시 미국은 유네스코가 주관한 1975년 초등학생 외국어능력시험에서 전체 참여국 중 끝에서 두 번째였고,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 중 40%가 이집트의 위치를 지도에서 찾지 못할 때였다.

  1975년 헬싱키조약에서 미국 대통령도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실천방안으로 외국어학습을 국가별로 장려하자는 약속에 동의했는데 이는 미국의 외국어교육에 큰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당시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지필시험을 준비하고 아무런 목적 없이 단어와 표현을 암기했다. 많은 사람이 말하기와 쓰기로 표현할 수 있는 외국어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교실 안에서 받은 점수와 학교 밖에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상관성은 매우 낮았다.

  당시 일리노이 주 폴 사이먼 하원의원은 외국어교육에 열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는 헬싱키조약을 상기시키면서 국가적인 관심을 외국어교육에 집중했다. 사이먼 의원에게 우군이 생겨서 국무부와 안전보장위원회도 자국인의 외국어 역량과 국제연구 자원을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 연구와 공청회가 계속돼 1979년 10월 15일 드디어 특별위원회가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국가 수준의 외국어교육 기준을 완성하고 평가 프로그램 개발에 지원을 계속하면서 정부와 학계가 여러 분야에서 협력해 비영리단체인 전미외국어교육협의체(ACTFL)가 1982년 구체적인 실행안을 발표했다. 대통령의 서명에서 끝나지 않고 새로운 교육전통이 현장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때부터 시작한 ACTFL의 언어교육 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외국어교육 현장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으며 지금도 미국 내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매년 여러 행사와 대회를 통해 의사소통과 문화교류를 위한 교육캠페인을 확산하고 있는데 올해도 올랜도에서 연중행사가 열렸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30년 전 미국처럼 우리도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언어교육 정책에 관한 한 한국은 여전히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새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약속한 수많은 언어교육정책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가. 보고서든 공약이든 결국 현장을 변화시킬 실천의 리더십을 보인 사이먼 의원이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 학생들은 오늘도 연필을 쥐고 시험문제를 푼다. 그들은 학생이라기보다 수험생으로서만 외국어를 공부한다. 학교 다닐 때 영어시험에 만점을 받은 학생이 대학에 와서 영어회화를 공부한다고, 토익을 공부한다고 다시 학원을 다닌다. 그럼에도 기업이 보기에 대학생의 영어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선다형에서 답을 찾는 공부를 지금의 절반만 줄인다면 더 많이 읽고, 더 즐겁게 말하고, 더 자주 써 볼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건 참 즐거운 모험인데 우리에게는 그저 억압이고 경쟁일 뿐이다.

  지금 이대로 놔두면 상황이 더 나빠짐을 모두 다 안다. 국가가 큰 용기를 갖고 새로운 교육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2년 만에 토플을 대체하는 토종 시험을 개발한다는 논리로는 어림없다. 원어민교사를 파견하겠다는 수준으로도 안 된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를 찾고 비전을 들어야 한다. 권한을 위임하고 비전을 가진 책임기관에 중장기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나라가 어렵더라도 제대로 시작하자고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신동일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ACTFL 한국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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